들어가며: 복잡한 도심, 무엇을 그리고 무엇을 버릴 것인가
높게 솟은 아파트와 빽빽하게 들어선 빌딩, 건물 사이로 보이는 나무와 산까지. 우리가 매일 지나치는 도심 풍경은 익숙하면서도 펜 드로잉의 소재로 바라보면 생각보다 훨씬 복잡합니다. 사진으로 보면 한눈에 들어오는 풍경도 막상 종이 위에 옮기려고 하면 수많은 창문과 건물의 선, 도로와 전선, 나무의 잎사귀까지 무엇부터 그려야 할지 막막해집니다.
특히 건물이 많은 풍경을 처음 펜으로 그릴 때는 눈앞에 보이는 것을 빠짐없이 표현하려는 마음이 생깁니다. 창문 하나하나를 그리고, 건물의 구조를 모두 따라가고, 나무의 잎까지 자세하게 표현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림 전체가 복잡한 선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처음에는 정교하게 그린 것처럼 보이지만 오히려 어디를 봐야 할지 알기 어려운 그림이 되기도 합니다.
이번 도심 풍경을 그리면서 다시 느낀 것은 복잡한 풍경일수록 더 많이 그리는 것보다 무엇을 남기고 무엇을 생략할 것인지 결정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점이었습니다. 실제 풍경의 모든 요소를 그대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내가 바라본 장면에서 중요한 건물과 형태를 골라내고 나머지는 펜선의 밀도와 간단한 형태로 정리하는 것입니다.
이번 그림에서는 화면 왼쪽의 고층 아파트를 중심으로 주변의 건물과 숲, 멀리 보이는 산을 함께 배치했습니다. 건축물의 직선적인 형태와 자연의 부드러운 선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보이도록 표현하면서, 복잡한 도심 풍경을 펜으로 어떻게 단순화할 수 있는지 작업 과정을 기록해 보았습니다.
1. 첫 단계: 전체 풍경에서 중심이 될 건물 정하기
도심 풍경을 그릴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눈에 보이는 건물을 모두 그리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먼저 사진이나 실제 풍경을 바라보면서 화면에서 가장 먼저 시선이 가는 대상을 찾았습니다. 이번 그림에서는 화면 왼쪽에 길게 솟아 있는 고층 아파트가 자연스럽게 중심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여러 건물이 함께 있는 풍경에서는 하나의 건물을 '주연 건물'로 정해두면 작업이 훨씬 수월해집니다. 중심 건물의 높이와 폭을 먼저 결정하고 나면 그 주변에 있는 건물들은 상대적인 크기로 배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건물을 각각 독립된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보다 전체 풍경을 몇 개의 큰 덩어리로 나누어 보는 방법입니다.
처음부터 창문이나 발코니 같은 세부적인 구조를 그리지 않고, 건물의 외곽선을 단순한 사각형과 직선으로 바라보았습니다. 특히 고층 건물은 수직선이 조금만 흔들려도 전체 형태가 어색하게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중심이 되는 수직선을 먼저 잡고, 건물의 상단과 하단이 어느 위치에서 만나는지를 확인하면서 밑그림을 진행했습니다.
뒤쪽의 건물과 산은 처음부터 자세하게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화면에서 차지하는 면적과 위치만 확인하고, 나중에 펜 작업을 하면서 필요한 정도의 형태만 남기기로 했습니다. 복잡한 풍경일수록 처음부터 세부 묘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이 오히려 전체적인 균형을 잡는 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두 번째 단계: 복잡한 건물을 큰 형태로 단순화하기
건물의 위치를 잡은 다음부터가 이번 작업에서 가장 중요했던 부분입니다. 실제 도심 건물에는 수많은 창문과 베란다, 외벽의 구조가 있지만 그것을 모두 그대로 그릴 필요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것을 같은 비중으로 표현하면 중심 건물과 주변 건물의 차이가 사라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앞쪽에 위치한 건물은 형태를 비교적 분명하게 남기고, 뒤로 물러난 건물은 창문의 반복적인 구조를 간단한 선이나 작은 면으로 줄였습니다. 가까운 건물이라고 해서 모든 창문을 빠짐없이 그린다는 의미도 아닙니다. 중요한 구조와 특징이 무엇인지 먼저 판단하고, 나머지는 일정한 리듬을 가진 선으로 정리하는 방식입니다.
특히 아파트 창문은 같은 크기의 사각형이 반복되기 때문에 무심코 하나씩 따라 그리다 보면 작업 시간이 지나치게 길어집니다. 저는 전체적인 창문의 방향과 간격을 먼저 바라본 뒤, 필요한 부분만 선을 남겼습니다. 어떤 창문은 또렷하게 표현하고 어떤 부분은 생략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실제보다 정보가 적어지지만 오히려 그림을 보는 사람은 건물의 특징을 더 쉽게 읽을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잘 그리는 것'과 '많이 그리는 것'은 같지 않다는 점입니다. 펜 드로잉에서는 선 하나를 더하는 것만큼 선 하나를 생략하는 판단도 중요합니다. 특히 복잡한 도시 풍경에서는 생략이 그림을 단순하게 만드는 동시에 전체적인 질서를 유지해주는 역할을 합니다.

3. 세 번째 단계: 선의 밀도를 달리해 복잡함 정리하기
도심 풍경을 그리면서 또 하나 신경 쓴 부분은 화면 전체의 선을 같은 정도로 진하게 만들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건물과 나무에 비슷한 양의 선을 넣으면 화면 전체가 하나의 덩어리처럼 보이기 쉽습니다. 그래서 중심이 되는 부분과 주변부의 선의 양을 조금씩 다르게 조절했습니다.
화면에서 시선이 머물기를 원하는 건물은 외곽선을 비교적 또렷하게 하고 필요한 구조를 조금 더 자세하게 표현했습니다. 반면 멀리 있는 건물은 창문을 모두 그리지 않고 짧은 선이나 가벼운 해칭으로 면의 느낌만 남겼습니다. 이렇게 하면 실제 풍경보다 훨씬 적은 선으로도 건물이 여러 겹으로 놓여 있다는 느낌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건물 아래쪽에 자리한 나무와 숲은 건축물과 반대되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건물은 직선과 각진 형태가 중심이라면 나무는 짧은 곡선과 불규칙한 선의 반복으로 표현했습니다. 잎사귀를 하나하나 그리기보다는 먼저 어두운 덩어리와 밝은 부분을 구분하고, 그 안에 필요한 만큼의 선을 더했습니다.
뒤쪽의 산 역시 산의 모든 능선과 나무를 자세하게 그리기보다 전체적인 윤곽만 남겼습니다. 가까운 숲에는 선을 조금 더 촘촘하게 사용하고 먼 산에는 선을 줄였습니다. 이처럼 거리와 대상에 따라 선의 양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복잡했던 화면이 조금씩 정리되었습니다.

4. 색연필은 펜 드로잉을 덮지 않고 분위기를 더하는 정도로
펜 작업이 끝난 뒤 색연필을 얹으면서는 색을 많이 사용하는 것보다 이미 만들어진 펜선이 살아 있도록 하는 데 신경을 썼습니다. 도심 풍경은 건물의 선이 많기 때문에 색을 강하게 올리면 화면이 금방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이번 그림에서는 하늘과 산, 숲에 푸른색과 녹색 계열의 색을 가볍게 얹어 차가운 건축물 사이에 자연의 분위기가 들어오도록 했습니다. 색연필을 한 번에 진하게 칠하기보다는 여러 번 얇게 겹쳐 종이의 질감과 펜선이 함께 보이도록 했습니다.
특히 건물 자체에는 색을 과하게 넣지 않았습니다. 이미 펜선으로 구조와 형태가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색은 전체 장면의 분위기를 연결해주는 역할만 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번 작업에서 색연필은 그림을 다시 그리는 과정이 아니라, 펜으로 정리한 도심 풍경에 자연스러운 온기를 더하는 마지막 과정에 가까웠습니다.
💡 복잡한 도심 풍경을 단순화할 때 기억할 것
- 먼저 주연 건물을 정합니다. 여러 건물을 똑같은 비중으로 그리지 않고 화면의 중심이 될 건물을 먼저 정하면 나머지 요소를 배치하기 쉬워집니다.
- 건물을 큰 덩어리로 바라봅니다. 창문이나 작은 구조부터 시작하지 않고 건물의 높이와 폭, 외곽 형태를 먼저 잡습니다.
- 모든 창문을 그리지 않습니다. 중요한 부분은 선명하게 표현하고 주변 건물의 반복되는 창문은 필요한 만큼만 남겨 복잡함을 줄입니다.
- 선의 밀도를 다르게 합니다. 가까운 곳과 중심이 되는 부분에는 조금 더 많은 선을 사용하고, 멀리 있는 대상은 간결하게 처리합니다.
- 자연물은 건축물과 다른 선으로 표현합니다. 건물의 직선과 나무·산의 부드럽고 불규칙한 선을 대비시키면 화면이 단조롭게 보이지 않습니다.
- 색연필은 마지막에 가볍게 얹습니다. 펜 드로잉의 선을 덮기보다 색과 선이 함께 보이도록 얇게 레이어링합니다.
🔗 펜 드로잉의 기초부터 차근차근 연습하고 싶다면
마치며: 복잡한 풍경일수록 덜 그리는 연습
이번 도심 풍경을 그리면서 가장 오래 생각했던 것은 '무엇을 더 그릴까'보다 '무엇을 그리지 않을까'였습니다. 사진 속에는 수많은 정보가 있지만 그림에서는 그 모든 정보를 똑같이 보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처음 펜 드로잉을 시작했을 때는 눈에 보이는 것을 가능한 한 많이 그리는 것이 잘 그리는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중요한 형태를 골라내고 불필요한 선을 덜어내는 과정이 더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특히 아파트나 빌딩이 많은 도심 풍경에서는 이 차이가 더욱 크게 느껴집니다.
이번 그림 역시 실제 도심 풍경을 그대로 옮긴 것은 아닙니다. 어떤 건물은 조금 단순하게 만들었고, 어떤 창문은 생략했으며, 나무와 산도 전체적인 형태가 느껴지는 정도로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덜어낸 덕분에 오히려 내가 바라보았던 풍경의 인상이 더 분명하게 남을 수 있었습니다.
복잡한 도심 풍경을 펜으로 그리는 일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그리려고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습니다. 먼저 하나의 건물을 정하고, 주변을 큰 덩어리로 나누고, 꼭 필요한 선만 하나씩 남겨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보는 연습을 반복하다 보면 평소에는 복잡하게만 보였던 빌딩과 아파트도 조금씩 그릴 수 있는 형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 이번 드로잉에서 기록한 것
복잡한 도심 풍경을 모두 그리지 않고, 중심이 되는 건물과 자연 요소를 선택한 뒤 선의 양과 세부 묘사를 조절해 하나의 장면으로 정리했습니다. 펜 드로잉은 결국 보이는 것을 그대로 복사하는 일이 아니라, 내가 바라본 풍경을 나만의 방식으로 선택하고 기록하는 과정이라는 것을 다시 배운 작업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