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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천 선암사 풍경 드로잉: 돌담길과 나무의 흐름을 따라 그린 기록

by PenAndLines 2026. 5.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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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순천 선암사의 돌담길 풍경 스케치

우연히 떠난 길 위에서 마음에 와닿는 풍경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순천 선암사의 한적한 돌담길이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카메라 셔터를 눌러 사진으로 남기는 것도 좋지만, 연필을 깎고 펜을 들어 종이 위에 한 선씩 옮겨 담을 때 그 풍경은 비로소 온전히 제 것이 됩니다. 이번 글은 선암사의 조용한 봄날을 바라보며, 돌담과 나무가 가진 자연스러운 선을 스케치북에 채워간 저의 작은 기록입니다.

순천 선암사의 깊은 안쪽 길을 가만히 걷다 보면, 유난히 오래도록 시선이 머무는 고요한 공간들이 있습니다. 눈을 자극하는 화려한 볼거리가 펼쳐진 곳은 아니지만, 세월의 흔적을 머금은 채 천천히 이어지는 돌담과 한쪽으로 부드러운 곡선을 그리며 길게 뻗은 나무의 흐름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아늑한 분위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번 풍경 드로잉 역시 처음부터 "잘 그려야겠다"는 욕심보다는, 그 고즈넉한 공간이 품고 있는 조용한 흐름을 스케치북 위에 가만히 기록해보고 싶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특히 양옆으로 이어지는 돌담 사이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중심을 묵직하게 잡고 있는 구조가 무척 인상적이었습니다.

왼쪽 돌담은 비교적 단정하고 곧게 이어지는 반면, 오른쪽 담장은 부드러운 사선을 그리며 길게 내려가 자연스럽게 보는 이의 시선을 안쪽 깊은 공간으로 이끌어줍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 자리한 나무는 마치 공간 전체의 균형을 조화롭게 잡아주는 기준점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는 나무의 외형만을 빽빽하게 채워 그리기보다, '길의 입체적인 흐름''시선의 자연스러운 이동'을 펜 선으로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에 집중하며 한 선씩 그어 내려갔습니다.

1. 밑그림 단계 – 공간의 흐름과 원근의 뼈대 잡기

복잡한 야외 풍경 드로잉을 시작할 때 가장 먼저 고민하게 되는 부분은 바로 "무엇을 화면의 중심에 둘 것인가"입니다. 이번 그림에서는 중앙의 큰 나무가 시선의 종착점이 되지만, 실제 공간의 깊이감을 만들어주는 핵심은 양옆 돌담의 기울기와 길의 흐름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초기 스케치

▲ [초기 스케치] 전체적인 원근감과 구도를 잡는 밑그림 단계. 오른쪽 돌담의 사선 기울기와 중앙 큰 나무의 비례를 설정하여 깊이감 있는 공간의 뼈대를 만드는 과정입니다.

📐 공간감을 살리는 구도 형성의 핵심

  • 멀어지는 사선 배치: 오른쪽 담장은 멀어질수록 폭이 좁아지는 느낌을 살리기 위해 기와선 간격과 높이를 조금씩 조절하며 가이드라인을 잡았습니다.
  • 시선을 이끄는 비대칭 구조: 왼쪽 돌담은 화면을 안정감 있게 받쳐주도록 비교적 평행하게 구성하고, 오른쪽 담장은 과감한 사선 흐름을 강조하여 시선이 자연스럽게 안쪽 공간으로 이어지도록 배치했습니다.
  • 여백의 활용: 처음에는 마당 바닥의 돌과 흙 표현을 더 채워 넣고 싶었지만, 선이 많아질수록 선암사 특유의 맑은 분위기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바닥면은 일부러 비워두어 그림이 숨을 쉴 수 있도록 조절했습니다.

2. 펜 작업 – 돌담과 나무의 질감을 선으로 표현하기

연필 선 위에 잉크를 올리는 펜 작업 단계에서는 어두운 부분을 무겁게 칠하기보다, 가느다란 선들을 겹쳐가며 담백한 분위기를 만드는 방향으로 접근했습니다. 이번 그림에서 가장 많은 시간이 걸렸던 부분은 양옆으로 길게 이어지는 돌담 표현이었습니다.

펜 스케치 진행

▲ [펜 스케치 진행] 0.05mm 라이너를 사용해 세밀한 질감을 올리는 과정. 기와의 단단한 형태를 먼저 정의하고, 돌담을 이루는 자연석들의 덩어리감과 명암을 가느다란 펜 선의 밀도로 조율해 나가는 단계입니다.

돌담은 단순해 보이지만 막상 펜을 대면 돌 하나하나의 모양 및 크기가 모두 달라 쉽게 복잡해집니다. 둥근돌, 납작한 돌, 틈 사이의 어두운 그림자까지 전부 다르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번 작업에서는 돌을 하나씩 복사하듯 따라가기보다, 돌담 전체의 흐름과 큰 덩어리를 먼저 보고 부분적인 질감을 추가하는 방식으로 접근했습니다.

✒️ 펜 선의 밀도로 거리감 표현하기

  • 돌담의 단단한 느낌: 돌담 아래쪽 그늘 부분에는 짧고 가는 선들을 여러 번 겹쳐 넣고, 작은 점들을 흩뿌려 거친 질감과 무게감이 느껴지도록 표현했습니다.
  • 나뭇잎을 덩어리로 바라보기: 나무 역시 잎사귀 하나하나를 그리기보다 중심 줄기를 먼저 잡고, 짧은 곡선과 점들을 반복해 전체적인 나뭇잎 흐름을 만들었습니다. 가까운 부분은 선을 촘촘하게, 먼 부분은 힘을 빼고 간결하게 처리하니 자연스럽게 앞뒤 거리감이 살아났습니다.

3. 색연필 채색 – 선을 살리면서 봄의 색 얹기

펜 스케치 위에 색을 올릴 때마다 가장 고민되는 부분은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입니다. 처음에는 선암사의 봄 풍경을 좀 더 화사하게 표현하고 싶어 강한 색을 올릴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색이 너무 짙어지면 펜 선 특유의 담백한 분위기가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전체적으로 은은하고 맑은 색감을 유지하는 방향으로 채색을 진행했습니다.

색연필 채색 최종본

▲ [색연필 채색 최종본] 투명하고 은은한 봄빛을 더해 완성한 최종 드로잉. 펜 선 고유의 담백함을 해치지 않도록 색연필을 얇게 레이어링 했으며, 왼쪽 겹벚꽃의 화사한 분홍빛과 중앙 신록의 연둣빛이 어우러져 선암사 특유의 고즈넉하고 맑은 정취를 자아냅니다.

🎨 펜 드로잉의 분위기를 살리는 채색 포인트

  • 하늘과 식물의 투명한 표현: 연한 하늘색으로 배경을 부드럽게 깔고, 나무와 풀은 연두와 녹색 계열을 여러 번 얇게 겹쳐 칠해 맑은 봄 공기를 표현했습니다.
  • 분홍색과 녹색의 대비: 왼쪽 담장 너머의 겹벚꽃은 밝은 분홍색으로 처리해 중앙 나무의 녹색과 자연스러운 대비를 만들었습니다. 덕분에 화면 전체 분위기가 조금 더 생기 있게 살아났습니다.
  • 오래된 돌담의 색감: 돌담은 회색만 사용하면 차갑고 단조롭게 보이기 쉬워 갈색과 따뜻한 회색, 약한 붉은색을 함께 겹쳐 오래된 돌담 특유의 깊은 분위기를 표현했습니다.

마당 바닥은 펜 작업 때와 마찬가지로 색도 최소한으로만 남겨두었습니다. 이 여백 덕분에 중앙 나무와 돌담 쪽으로 시선이 자연스럽게 모이며 화면의 흐름이 조금 더 안정적으로 정리될 수 있었습니다.

마치며: 풍경 드로잉은 결국 관찰의 기록

스케치북 마지막 장에 날짜를 적으며 다시 느낀 것은, 풍경 드로잉은 단순히 예쁜 장면을 따라 그리는 일이 아니라 그날 내가 바라본 시선과 감정을 기록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점이었습니다. 사진은 빠르게 순간을 남기지만, 펜 드로잉은 한 장면을 오래 바라보게 만듭니다. 돌담의 방향, 나뭇가지의 흐름, 공간의 조용한 분위기까지 손끝의 선을 따라 천천히 기억 속에 남게 됩니다.

물론 지금 다시 보면 비례가 어색한 부분도 있고, 선이 흔들린 곳도 보입니다. 하지만 무엇을 강조하고 무엇을 비워둘지 고민했던 시간 역시 모두 그림 안에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저에게는 완벽한 결과보다도 이런 과정의 기록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습니다.

💡 함께 읽으면 좋은 드로잉 노하우

이번 선암사 작업처럼 복잡한 자연 풍경 속에서 형태를 잃지 않고 공간감을 표현하는 방법이 궁금하시다면 아래 글도 함께 참고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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