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펜을 바꾸기 시작한 이유
처음에는 펜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떤 라이너를 쓰든 결국 그리는 사람의 실력이 더 중요하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한동안은 하나의 펜만 고집하며 계속 사용했습니다. 익숙함 덕분에 안정감은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림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은 대상을 다른 펜으로 그려보게 되었습니다. 단순한 호기심이었지만 결과는 예상보다 크게 달랐습니다. 선의 질감이 달라지고, 그림 전체의 분위기가 미묘하게 바뀌는 것을 보면서 도구가 결과에 미치는 영향을 처음으로 체감하게 되었습니다. 그 이후로 저는 의도적으로 여러 라이너를 번갈아 사용해 보기 시작했고, 지금은 자연스럽게 상황에 따라 펜을 나눠 쓰게 되었습니다. 이 글은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그렇게 사용하면서 달라진 흐름과 경험에 대한 기록입니다.

스테들러: 흔들림을 줄여주던 시작점
펜 드로잉을 처음 시작했을 때 가장 오래 사용했던 펜은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였습니다. 선이 일정하고 펜촉이 단단해서, 아직 손이 익지 않았던 시기에도 비교적 안정적으로 선을 그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선이 흔들리던 시기에는 이 펜 덕분에 형태를 유지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한 가지 아쉬운 점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선이 너무 일정하다 보니 그림 전체가 다소 딱딱하게 보이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로는 구조를 잡을 때는 스테들러를 사용하고, 분위기를 살리는 단계에서는 다른 펜을 함께 쓰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기본 형태를 잡을 때는 가장 먼저 손이 가는 펜입니다.
마이크론: 선이 풀리기 시작한 순간
스테들러만 사용하던 시기를 지나 마이크론을 처음 사용했을 때, 가장 크게 느낀 차이는 ‘선의 유연함’이었습니다. 펜이 종이 위를 부드럽게 지나가면서 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졌고, 그림 전체의 분위기도 훨씬 편안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해칭을 할 때 그 차이가 분명하게 드러났습니다. 이전에는 선을 하나씩 쌓아 올리는 느낌이었다면, 마이크론을 사용할 때는 선이 자연스럽게 이어지면서 밀도가 부드럽게 형성되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섬세한 표현이나 해칭 작업에서는 마이크론을 먼저 선택하게 되었습니다.
윈저앤뉴튼: 선의 밀도가 달라지는 경험
윈저앤뉴튼 파인라이너를 사용하면서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은 잉크의 농도였습니다. 같은 선을 그어도 훨씬 또렷하게 보였고, 그림 전체의 대비가 자연스럽게 살아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 펜은 특히 강조가 필요한 부분에서 효과적이었습니다. 건물의 윤곽선이나 주요 포인트를 잡을 때 사용하면 그림의 중심이 또렷해졌습니다. 그래서 지금은 전체를 그릴 때보다는, 마무리 단계에서 선의 강약을 조절하는 용도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코픽 멀티라이너 0.03: 디테일의 한계를 넘어서
코픽 멀티라이너 0.03을 처음 사용했을 때는 다루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펜촉이 매우 얇아 조금만 힘이 들어가도 선이 망가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오히려 사용을 꺼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점차 익숙해지면서 이 펜이 가진 장점이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먼 배경이나 아주 미세한 디테일을 표현할 때, 다른 펜으로는 만들기 어려운 깊이를 만들어주었습니다. 지금은 작업의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마지막에 사용하는 펜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지금은 이렇게 나눠서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여러 펜을 번갈아 사용하면서 자연스럽게 하나의 흐름이 만들어졌습니다. 더 좋은 펜을 찾기보다는, 상황에 따라 어떤 펜을 쓰는지가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구조를 잡을 때는 스테들러, 해칭과 자연스러운 선 표현은 마이크론, 강조가 필요한 부분은 윈저앤뉴튼, 그리고 디테일 마무리는 코픽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나눠서 사용하다 보니 그림의 완성도가 조금 더 안정적으로 유지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래도 제일 좋아하는 라이너 하나를 꼽으라면 저는 스테들러 피그먼트 라이너입니다.
마치며: 도구보다 남는 것은 과정
예전에는 더 좋은 펜을 찾기 위해 계속 새로운 도구를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습니다. 어떤 펜을 쓰느냐보다, 그 펜을 어떻게 사용하게 되었는지의 과정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펜 하나를 바꾸는 것만으로도 그림의 느낌은 충분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변화를 직접 경험하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쌓아가는 과정이 결국 더 오래 남는다는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기록이 여러분이 자신만의 방식을 만들어가는 데 작은 참고가 되었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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