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벚꽃 핀 간이역을 그리며 만난 원근과 구도의 어려움
완연한 봄날, 잠시 피었다가 금세 흩어질 벚꽃과 조용한 간이역의 풍경을 스케치북에 남겨두고 싶어 펜을 들었습니다. 자연 풍경을 그릴 때와는 조금 다른 느낌의 작업이었습니다. 나무와 꽃처럼 자유로운 형태와 달리 기차는 앞면과 측면, 창문과 지붕, 철로까지 각각의 선이 일정한 구조와 비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전체적인 덩어리를 눈으로 확인한 뒤 바로 펜을 사용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작업을 진행할수록 기차의 형태가 생각처럼 쉽게 잡히지 않았습니다. 조금만 비례가 어긋나도 기차가 어색하게 길어 보이고, 철로와 연결되는 방향이 자연스럽지 않게 느껴졌습니다. 이번 그림을 그리면서 다시 한번 느낀 것은 직선과 구조가 많은 인공물을 그릴 때는 선을 그리기 전에 전체적인 원근과 구도를 먼저 확인해야 한다는 점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벚꽃 핀 간이역 풍경을 펜 드로잉으로 완성하는 과정에서 제가 직접 겪었던 어려움과, 작업을 이어가며 생각했던 구도와 원근, 그리고 펜 선의 역할에 대해 기록해 보려고 합니다. 완벽하게 그린 결과를 설명하기보다, 한 장의 그림을 완성하면서 무엇이 어려웠고 무엇을 다시 확인하게 되었는지를 중심으로 정리한 작업 기록입니다.
1. 기차를 그리며 가장 먼저 어려웠던 것은 형태보다 전체적인 방향이었다
자연 풍경을 그릴 때는 조금씩 형태가 달라져도 나름의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나무의 가지가 조금 다르게 뻗어 있어도, 돌의 모양이 조금 달라도 크게 어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기차처럼 사람이 만든 구조물은 달랐습니다. 직선이 향하는 방향과 각각의 비례가 조금만 어긋나도 금방 어색하게 보였습니다.
이번 그림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부분은 기차의 앞면과 측면이 이어지는 흐름이었습니다. 앞면만 보고 그리면 측면의 길이가 어색해지고, 측면만 신경 쓰면 전체적인 기울기가 달라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창문의 간격과 철로의 폭 역시 가까운 곳과 먼 곳이 똑같아 보이지 않도록 계속 확인해야 했습니다.
처음부터 복잡한 원근법을 정확하게 적용하려 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펜을 사용하기 전에 기차의 위쪽과 아래쪽 선이 어느 방향으로 이어지는지, 철로가 화면 안에서 어떻게 멀어지는지를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그림을 시작하기 전 이 기본적인 흐름을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이후 작업에서 훨씬 덜 흔들릴 수 있었습니다.

2. 이번 작업에서 다시 확인한 연필 가이드라인의 필요성
저는 펜 드로잉을 할 때 가능한 한 자유롭게 선을 사용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특히 나무나 돌, 풀처럼 일정하지 않은 자연물을 그릴 때는 처음부터 너무 많은 기준선을 만드는 것보다 전체적인 흐름을 보면서 선을 이어가는 편이 더 자연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때가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처럼 기차와 철로처럼 직선이 많고 구조가 분명한 대상을 그릴 때는 이야기가 달랐습니다. 펜으로 한 번 그은 선은 쉽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처음의 작은 오차가 계속 이어질 가능성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펜을 들기 전에 연필로 전체적인 외곽과 방향을 아주 가볍게 잡았습니다.
- 먼저 전체적인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기차가 화면에서 어느 정도의 크기를 차지할지, 벚꽃과 간이역의 공간은 어디에 남길지부터 살펴보았습니다.
- 기차의 큰 외곽을 단순하게 잡았습니다. 처음부터 창문이나 헤드라이트를 그리지 않고 앞면과 측면, 지붕의 큰 흐름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 철로와 기차의 방향을 함께 보았습니다. 각각 따로 그리기보다 서로 연결되는 방향이 자연스러운지 계속 비교했습니다.
- 세부적인 요소는 가장 나중에 확인했습니다. 전체적인 구도가 어느 정도 안정된 뒤 창문과 작은 구조물을 추가했습니다.
연필 가이드라인은 그림을 복잡하게 만드는 과정이 아니라, 저에게는 오히려 펜을 사용할 때 망설임을 줄여주는 과정이었습니다. 특히 인공물처럼 구조가 중요한 대상에서는 처음 몇 분 동안의 관찰과 확인이 이후의 긴 작업 시간을 훨씬 편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을 다시 느꼈습니다.
3. 작업을 진행하며 구도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 다시 확인했던 세 가지
펜 드로잉을 하다 보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형태가 조금씩 달라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번 작업에서도 선을 쌓아갈수록 기차의 형태와 주변 공간의 균형이 계속 마음에 걸렸습니다. 이미 펜으로 그린 부분을 지울 수 없기 때문에 작업을 중단하고 다시 처음부터 시작할까 고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무조건 선을 더하기보다 화면 전체를 다시 바라보았습니다. 그 과정에서 제가 확인했던 것은 다음 세 가지였습니다.
① 철로가 만들어주는 전체적인 방향
기차 자체의 세부적인 형태에 집중하다 보면 전체적인 방향을 놓치기 쉬웠습니다. 그래서 잠시 작업을 멈추고 화면 아래쪽의 철로를 다시 살펴보았습니다. 철로는 화면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멀어지는 방향을 보여주는 요소였습니다. 이 기준을 다시 확인한 뒤 기차의 위치와 주변 선들의 흐름을 비교하니 화면 전체를 바라보기가 조금 더 쉬워졌습니다.
② 명암을 더하기 전에 형태를 먼저 살펴보기
형태가 어색하게 느껴질 때 무조건 어두운 선이나 해칭을 추가하면 오히려 그림이 더 복잡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먼저 형태와 선의 방향을 확인한 뒤 필요한 부분에만 명암을 더했습니다. 기차 주변과 철로 아래쪽처럼 그림자를 통해 무게감을 줄 수 있는 부분은 조금 더 밀도를 높였지만, 모든 부분을 같은 강도로 채우지는 않았습니다.
③ 벚꽃 주변의 밝은 여백을 남겨두기
이번 그림에서 벚꽃은 기차의 단단한 구조와 대비되는 중요한 요소였습니다. 처음에는 꽃을 조금 더 자세히 표현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선을 계속 추가하면 봄 풍경 특유의 가벼움이 사라질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꽃잎을 하나하나 그리기보다 가지와 어두운 부분을 중심으로 표현하고 밝은 종이의 여백을 남겨두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비워둔 공간이 기차의 실루엣을 더 또렷하게 보여주는 역할도 했습니다.

👍 기차와 건축물처럼 구조가 있는 대상을 그릴 때 제가 기억하려는 것
- 펜을 들기 전에 전체적인 방향부터 확인하기: 세부적인 모양보다 먼저 가장 길게 이어지는 선들이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봅니다.
- 처음에는 큰 덩어리만 단순하게 잡기: 창문이나 작은 구조물을 먼저 그리기보다 전체적인 외곽과 비례가 자연스러운지 확인합니다.
- 연필 가이드라인을 부담스럽게 생각하지 않기: 구조가 복잡한 대상에서는 가벼운 기준선이 펜 작업의 실수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됩니다.
- 형태가 마음에 걸릴 때 무조건 선을 더하지 않기: 잠시 펜을 내려놓고 화면 전체의 방향과 균형을 다시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 여백도 하나의 표현으로 남겨두기: 모든 공간을 선으로 채우기보다 밝게 남겨야 할 부분을 구분하면 화면이 훨씬 편안해집니다.
마치며: 비뚤어진 선을 통해 다음 그림의 기준을 배우다
완성한 뒤 다시 바라보면 이번 그림에도 아쉬운 부분은 남아 있습니다. 기차의 비례와 방향을 조금 더 정확하게 잡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도 들고, 벚꽃 주변은 조금 더 과감하게 비워두었어도 좋았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하지만 그림을 그릴 때마다 이런 아쉬움이 남는다는 것은 다음 작업에서 무엇을 더 살펴봐야 하는지 알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특히 이번 벚꽃 핀 간이역을 그리면서 저는 원근과 구도는 어려운 이론을 외우는 것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리는 대상의 방향과 관계를 끝까지 관찰하는 데서 시작된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기차의 지붕선과 바닥선, 철로가 멀어지는 방향, 그리고 그 사이에 놓인 벚꽃의 공간을 계속 비교하는 과정 자체가 저에게는 하나의 원근 연습이었습니다.
펜 드로잉은 한 번 그은 선을 쉽게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때로는 부담스럽습니다. 하지만 그래서 더 천천히 바라보게 되고, 작은 어긋남도 발견하게 됩니다. 이번 그림에서 비뚤어졌다고 느꼈던 선과 망설였던 순간들도 결국 다음 그림을 위한 기준으로 남을 것입니다.
지금 그리고 있는 그림의 구도나 원근이 마음에 들지 않아 고민하고 있다면, 무조건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기보다 잠시 거리를 두고 전체를 바라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어색한지 발견했다는 것만으로도 이미 다음 그림을 조금 더 잘 그릴 준비를 하고 있는 것이니까요. 이번 벚꽃 핀 간이역 역시 완벽한 한 장이라기보다, 기차라는 낯선 대상을 펜으로 그리며 다시 한 번 관찰하고 배운 과정을 남긴 한 장의 기록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