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초보자의 장벽을 넘어 작품을 완성하는 법
펜 드로잉을 처음 시작하여 형태를 잡는 데 어느 정도 익숙해진 초보자들이 가장 먼저 맞닥뜨리는 거대한 장벽은 바로 '명암(Shading)'입니다. 정성스럽게 스케치를 마치고 기분 좋게 명암을 넣기 시작했는데, 어느 순간 그림이 지저분해지거나 의도치 않게 시커멓게 타버린 경험이 한두 번쯤은 있으실 것입니다.
저 역시 독학으로 펜 드로잉을 연습하던 초기에는 명암만 넣으면 그림을 망치기 일쑤여서, 한동안은 명암 없이 선으로만 그림을 그리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펜 드로잉의 진정한 매력은 잉크가 겹치며 만들어내는 깊이 있는 어둠과 그 어둠 속에서 피어나는 입체감에 있습니다.
펜은 연필처럼 문질러서 부드러운 그러데이션을 만들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해칭(Hatching)'이라는 선의 나열과 중첩을 통해 빛과 그림자를 구현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수백 장의 실패작을 만들며 깨달은 비밀들을 심도 있게 다루어 보겠습니다.
1. 입문자가 가장 많이 저지르는 치명적 실수: '지그재그' 해칭
가장 흔하면서도 그림을 지저분하게 만드는 주범은 바로 손을 종이에서 떼지 않고 빠르게 왔다 갔다 하며 면을 채우는 '지그재그(Zig-zag) 해칭'입니다. 마음이 급하거나 빨리 면을 채우고 싶을 때 자신도 모르게 이런 습관이 나오게 됩니다.
⚠️ 지그재그 해칭이 그림을 망치는 이유:
- 선이 꺾이는 지점에서 잉크가 뭉치게 되어 의도치 않은 진한 점들이 생깁니다.
- 그림 전체의 톤을 불규칙하게 만들고 시선을 분산시킵니다.
- 선의 끝처리가 날카롭지 못해 그림이 전반적으로 둔탁하고 초보적인 느낌을 줍니다.
✅ 올바른 해결 방법: '독립적인 선' 긋기
명암을 넣을 때는 반드시 '선 하나를 긋고 펜을 종이에서 완전히 뗀 뒤, 다음 선을 긋는 것'이 원칙입니다. 모든 해칭 선이 각자의 시작점과 끝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그은 선들은 사이사이에 미세한 여백을 남기며, 이 여백이 확보되어야만 펜 드로잉 특유의 맑고 투명한 명암층이 형성됩니다.
2. 해칭의 기초: 단순한 선이 입체가 되는 과정

위 연습 기록은 사선, 가로, 세로 세 가지 방향의 해칭이 구(Sphere)라는 입체물에 어떻게 적용되는지를 보여주는 핵심 과정입니다.
- 선의 방향성(Direction): 사물의 곡면을 따라 선의 각도를 미세하게 조절해야만 자연스러운 덩어리감(Volume)이 살아납니다.
- 밀도의 단계(Density): 가장 어두운 부분인 '코어 섀도'는 선을 촘촘하게 겹치는 크로스 해칭을 통해 깊이감을 주어야 합니다.
- 여백의 미: 빛이 닿는 하이라이트는 선을 비워둠으로써 종이의 흰색이 곧 가장 밝은 빛이 되게 합니다.
3. 해칭 방향과 크로스 해칭의 전략
① 사물의 '흐름(Flow)'을 관찰하라
단순히 대각선으로만 채우는 것은 그림을 평면적으로 만듭니다. 제가 명암 공부를 하며 깨달았던 팁은 "사물의 표면을 내 손가락으로 직접 만지고 있다고 상상하는 것"이었습니다. 둥근 물체를 그릴 때는 물체의 굴곡을 따라 부드럽게 휜 '곡선 해칭(Contour Hatching)'을 사용해야 합니다.
② 입체감을 극대화하는 '크로스 해칭' 전략
단일 방향의 선만으로는 충분한 어둠을 만들기 어렵습니다. 이때 겹침의 황금 각도인 '15도의 미학'을 기억하십시오. 많은 입문자가 기존 선과 90도 직각으로 선을 겹치지만, 이는 격자무늬처럼 보여 부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약 15~30도 정도만 살짝 각도를 틀어 겹치면 훨씬 밀도 높은 어둠을 만들어냅니다.
4. 실전 적용: '쉼'이 있는 풍경 (남원 서도역)

기초 연습을 충분히 거쳤다면 실제 풍경에 기법을 녹여낼 차례입니다. 남원 서도역을 배경으로 한 이 작품에는 앞서 설명한 원리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 점묘법(Stippling)의 조화: 바닥의 거친 질감을 표현하기 위해 무수한 점을 찍었습니다. 이는 단순한 선보다 훨씬 더 부드러우면서도 묵직한 무게감을 줍니다.
- 원근감을 만드는 선의 강약: 가까이 있는 나무는 진하고 굵은 선으로, 멀리 보이는 배경 나무들은 아주 가는 선으로 묘사하여 한 화면 안에서 깊은 공간감을 창출했습니다.
- 디테일의 완성, 그림자: 자전거와 벤치 아래의 짙은 그림자를 확실하게 잡아줌으로써, 밝은 햇살이 내리쬐는 평화로운 낮의 분위기가 역설적으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 독학자를 위한 실전 명암 연습 루틴
- 5단계 그라데이션 박스 연습: 직사각형 5개를 그려놓고, 선의 간격과 겹침 횟수만으로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갈수록 어두워지게 채워보십시오.
- 단일 물체 집중 해칭: 복잡한 풍경 대신 오직 '공(Sphere)' 하나만 그려보십시오. 이 연습이 끝나면 어떤 복잡한 사물도 두렵지 않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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