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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이역 회화나무 풍경화로 보는 펜 드로잉 시점 변화와 관찰 표현법

by PenAndLines 2026. 5.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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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반복해서 그리며 조금씩 바뀐 기준

펜 드로잉을 처음 시작했을 때는 눈앞에 보이는 대상을 가능한 한 비슷하게 옮기는 데 집중했습니다. 선이 흔들리지 않는지, 형태가 정확한지, 명암을 충분히 넣었는지를 하나씩 확인했습니다. 그림을 완성하고 나면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다음 그림을 시작할 때는 또 비슷한 고민을 반복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여러 장의 그림을 그리고 다시 돌아보면서 조금씩 달라진 것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어떻게 더 많이 그리고 더 정확하게 표현할지를 고민했다면, 지금은 무엇을 먼저 보고, 무엇을 남기며,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간이역의 기차를 그리면서는 구도의 기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꼈고, 벚꽃 풍경을 그리면서는 모든 것을 채우기보다 밝은 부분을 남겨두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복잡한 풍경에서는 선의 개수를 늘리기보다 방향과 밀도를 조절하는 방법을 생각하게 되었고, 오래된 회화나무를 그릴 때는 더 그리고 싶은 마음을 멈추는 것도 하나의 선택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이 글에서는 그동안의 몇 가지 작업을 돌아보며, 반복해서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 제 안에 조금씩 생긴 펜 드로잉의 기준을 정리해 보려고 합니다. 각각의 작업에는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지만, 그 아쉬움 덕분에 다음 그림을 시작할 때 무엇을 먼저 살펴봐야 하는지는 조금씩 알게 되었습니다.

각 작업의 구체적인 과정과 시행착오는 아래의 관련 글에서 이어집니다.

1. 구도는 감으로 시작하기보다 먼저 기준을 찾는 것이었다

벚꽃이 핀 간이역 풍경을 그릴 때 가장 어려웠던 대상은 기차였습니다. 나무나 꽃처럼 자유로운 형태와 달리 기차는 앞면과 측면, 지붕과 창문이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평소처럼 전체적인 형태를 눈으로 보며 바로 펜을 사용하려 했지만, 작업을 진행할수록 기차의 방향과 비례가 조금씩 어색하게 느껴졌습니다.

특히 기차의 정면과 측면이 함께 보이는 구도에서는 어느 한 부분만 보고 그릴 수 없었습니다. 기차의 지붕선과 아래쪽 선이 향하는 방향, 철로가 멀어지는 흐름, 창문의 간격까지 서로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림을 다시 시작하면서부터는 바로 펜을 들기보다 연필로 큰 흐름을 먼저 확인했습니다. 정확한 투시도를 완벽하게 계산하는 것보다, 화면 안에서 어떤 선이 어디로 향하는지 확인할 수 있는 기준을 먼저 만드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철로의 방향과 기차의 외곽을 가볍게 잡아두고 작업을 시작하니 이후의 펜 작업에서도 훨씬 덜 흔들렸습니다.

그때부터 구도는 감으로만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펜을 들기 전에 먼저 확인해야 하는 하나의 기준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직선이 많거나 구조가 분명한 인공물을 그릴 때는 처음 몇 분 동안 전체적인 방향을 살펴보는 시간이 중요했습니다. 세부적인 부분을 잘 그리는 것보다 먼저 전체가 어느 방향으로 놓여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그림을 훨씬 안정적으로 만들어주었습니다.

👉 [관련 글] 벚꽃 핀 간이역을 그리며 배운 펜 드로잉 원근과 구도 잡는 방법

2. 공간감은 얼마나 채웠는가보다 어떻게 남겼는가에 가까웠다

벚꽃 풍경을 그릴 때는 처음에 꽃을 많이 그릴수록 풍성한 느낌이 살아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꽃이 모여 있는 부분을 하나하나 선으로 채우려 했습니다. 하지만 작업을 계속할수록 그림은 오히려 무거워졌습니다. 밝아야 할 벚꽃까지 어두운 선으로 채워지면서 봄 풍경 특유의 가벼운 느낌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림을 보며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밝은 부분도 그림의 일부라는 점이었습니다. 펜으로 표현하지 않은 흰 종이 역시 아무것도 하지 않은 공간이 아니라, 빛과 공기를 보여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이후에는 꽃 전체를 자세하게 묘사하기보다 먼저 큰 덩어리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가장 밝게 보이는 부분은 가능한 한 비워두고, 가지와 그림자가 필요한 곳에만 선을 더했습니다. 모든 꽃잎을 설명하지 않아도 주변의 어두운 부분과 남겨둔 여백이 함께 있으면 꽃의 덩어리가 느껴졌습니다.

물론 어디를 비울지는 지금도 가장 어려운 부분 중 하나입니다. 너무 많이 비우면 표현이 부족하게 느껴지고, 반대로 너무 많이 채우면 화면이 답답해집니다. 하지만 그림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느낀 것은 공간감은 단순히 선을 줄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라, 무엇을 밝게 남길 것인지 먼저 생각할 때 조금 더 자연스럽게 만들어진다는 점입니다.

밝은 부분을 남겨두는 선택 하나가 전체 풍경의 분위기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벚꽃 풍경을 통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관련 글] 거창 용원정의 봄 풍경을 펜 드로잉으로 기록하다

3. 질감은 선을 많이 그리는 것보다 방향과 밀도를 보는 것이었다

복잡한 풍경을 그릴 때는 질감을 표현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선을 계속 추가했던 적이 많습니다. 나무의 표면, 돌담, 갯벌, 풀처럼 형태가 복잡한 대상을 만나면 빈 공간이 불안하게 느껴졌습니다. 조금 부족해 보이면 선을 하나 더 그리고, 다시 부족해 보이면 또 선을 더했습니다.

하지만 선이 많아진다고 해서 질감이 더 잘 표현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모든 부분의 밀도가 비슷해지면 화면 전체가 무거워지고, 가까운 곳과 먼 곳의 차이도 줄어들었습니다.

그래서 조금씩 작업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먼저 대상의 형태를 따라 선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를 생각하고, 그다음 가까운 부분과 먼 부분의 밀도를 다르게 두려고 했습니다. 가까운 곳은 형태가 비교적 분명하게 보이도록 선을 조금 더 사용하고, 멀어지는 부분은 모든 것을 설명하기보다 단순하게 처리했습니다.

이 방법이 언제나 정답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무조건 선을 늘리는 것보다 화면 전체를 조절하기가 쉬웠습니다. 질감은 하나의 정해진 기법으로 표현하기보다 대상마다 다른 선의 방향과 간격을 관찰하면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이제는 질감이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먼저 선을 더하기보다, 지금 있는 선의 방향과 밀도가 자연스러운지부터 살펴보려고 합니다.

👉 [관련 글] 풍경 펜 드로잉 순서: 연필 초벌 스케치부터 완성까지 실패 없는 4단계

4. 완성은 더 그리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오래된 회화나무를 그릴 때는 마지막 단계에서 가장 오래 고민했습니다. 전체적인 형태가 어느 정도 완성된 뒤에도 무언가 부족해 보였습니다. 가지 사이의 빈 공간을 조금 더 채우고 싶었고, 나무껍질의 질감도 더 자세하게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펜을 놓지 못하고 선을 조금씩 더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처음에 느꼈던 가벼운 흐름이 줄어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표현을 더한 부분이 반드시 그림을 더 좋게 만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그때 다시 느꼈습니다.

그림을 그리다 보면 언제 멈춰야 하는지를 판단하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습니다. 아직 부족해 보이는 부분도 있고, 조금만 더 하면 좋아질 것 같은 마음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어떤 순간에는 더하는 것보다 그대로 두는 것이 더 자연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작업 중간이나 마무리 단계에서 한 번씩 펜을 내려놓고 그림에서 조금 떨어져 전체를 바라보려고 합니다. 지금 더하려는 선이 정말 필요한지, 아니면 단지 비어 있는 공간이 불안해서 더하려는 것인지 스스로 묻게 되었습니다.

더 그리고 싶은 마음이 들 때 한 번 멈춰보는 것 역시 펜 드로잉에서 필요한 하나의 습관이라는 것을 조금씩 배우고 있습니다.

5. 결국 그림을 보는 시점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처음에는 대상을 어떻게 똑같이 그릴 것인가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여러 풍경을 그리면서 사진이나 눈앞의 풍경을 그대로 옮기는 것만이 드로잉의 전부는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같은 풍경을 보더라도 어떤 사람은 오래된 나무의 형태에 먼저 눈길이 갈 수 있고, 어떤 사람은 그 주변의 빛과 그림자, 또는 멀어지는 길의 흐름에 더 관심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과정에서는 결국 모든 것을 똑같이 담을 수 없기 때문에 무엇을 중요하게 볼 것인지 선택하게 됩니다.

저 역시 작업을 반복하면서 조금씩 선택하는 기준이 생기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을 빠뜨리지 않으려 했다면, 지금은 그림에서 꼭 남기고 싶은 부분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려고 합니다. 어떤 그림에서는 전체적인 구도가 중요하고, 어떤 그림에서는 빛이 비추는 밝은 공간이 더 중요합니다. 또 어떤 풍경에서는 복잡한 질감보다 대상의 흐름을 단순하게 보여주는 편이 더 자연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아직도 그림을 시작할 때마다 고민은 반복됩니다. 하지만 예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고민을 단순히 어려움으로만 생각하지 않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그릴지 고민하는 시간 역시 그림의 일부이고, 그 선택이 쌓이면서 조금씩 나만의 방식이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마치며: 반복은 결국 나만의 기준을 남깁니다

몇 장의 드로잉을 다시 돌아보면 완성된 결과보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했던 선택들이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기차를 그리며 구도의 기준을 찾았고, 벚꽃을 그리며 밝은 부분을 남겨두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복잡한 풍경에서는 선의 양보다 방향과 밀도를 살펴보게 되었고, 회화나무를 그리면서는 더하는 것만큼 멈추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런 기준은 한 번의 그림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닙니다. 어떤 그림에서는 잘되지 않았고, 완성한 뒤에야 왜 어색했는지 알게 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남은 아쉬움이 다음 그림을 시작할 때는 하나의 질문이 되었습니다.

이번에는 구도를 먼저 확인했는가.
이번에는 너무 많은 선을 더하지 않았는가.
밝게 남겨야 할 공간을 충분히 남겨두었는가.
그리고 지금 더하려는 선이 정말 필요한가.

아마 앞으로도 이 질문에 매번 만족스러운 답을 찾지는 못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림을 반복할수록 조금씩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자체가 펜 드로잉을 계속하게 만드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만약 지금 그림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 어려움 역시 자신만의 기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잘 그리겠다는 마음으로 모든 것을 채우기보다 한 번 더 관찰하고, 필요한 곳만 남기고, 때로는 한 번 덜 그려보는 것. 그런 작은 선택들이 쌓이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그림을 보는 시점도 만들어지는 것 같습니다.

✔ 이번 작업들을 돌아보며 정리한 펜 드로잉의 기준

  • 구도: 감으로 시작하기보다 전체적인 방향과 기준을 먼저 확인합니다.
  • 공간감: 모든 곳을 채우기보다 밝게 남겨야 할 부분을 생각합니다.
  • 질감: 선의 개수를 늘리기보다 방향과 간격, 밀도를 조절합니다.
  • 표현: 보이는 모든 것을 옮기기보다 그림에서 남기고 싶은 것을 선택합니다.
  • 완성: 더해야 할 선과 멈춰야 할 순간을 함께 판단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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